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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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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도시가 고향이다. 그런데도 도시인이 그리는 고향은 따로 있다. 고향에는 오래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자연도, 환경도 원형을 유지해야 제대로 된 고향이다. 억세고 거칠지만, 찰진 엄마의 손맛이 고여 있어야 한다. 향수는 그래야 생기는 거다.

도시는 각양각색의 사람이 각자가 맡은 일을 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는 공간이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개성적인 삶을 지킬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사는 도시는 정이 들지 않는다. 소나무 몇 그루를 기다랗게 박아놓은 자칭 명품아파트, 철근으로 만든 운동기구가 폼 없이 앉아있는 공터, 산허리까지 밀고 들어온 콘크리트바닥, 인허가조건을 맞추기 위한 조악한 조형물이 우리를 삭막하게 만든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된 도시 중에는 이런 모습이 아닌 곳도 많다. 호주 멜버른 중심가에는 개척시대 영국인이 살던 주택이 원형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00년을 넘긴 가구와 먼지 하나조차도 빛을 발하고 있다. 물론 집안으로 누구나 들어갈 수도 있다. 일본 오타루는 운하 가까이에 있는 못쓰게 된 물류창고를생맥주홀로 바꾸었다. 높다란 목조 천장과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이 술맛을 챙긴다. '원형 따로 실제 따로'가 아니다. 제대로 된 환경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숨쉬고 있다.

요즈음 선거를 앞둔 예비후보사무실 초대를 자주 받는다. 한두번의 인연뿐인데도 오라는 사람도 있고, 선후배로 엮인 오랜 지인도 있다. 가보면 안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공약을 말하는 후보가 태반이다. 이력은 화려하지만 내용이 없다.

나이 든 우리들이야 그리워할 고향이라도 있다. 버들피리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수줍은 동백꽃을 볼 수도 있다. 올챙이가 꼬물거리는 개울은 내 마당이고 친구의 정원이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 자식들이다. 농촌이고 도시고 정이 가는 공간이 없다. 콘크리트 아파트가 군소재지까지 잠식했다. 산 아래 재실은 녹슨 자물쇠로 잠겨져있다. 공개적으로 말하겠다. "유권자 여러분의 고향을 찾아 드리겠습니다"라는 후보라면 우리 부부 2표는 거저다. 이번만은 아내가 내말을 들어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한상덕(대경대 연극영화방송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