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1년 8월 15일 문화가산책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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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뉴스 [문화가산책] 너나 잘하세요한상덕 대경대 교수
부모 세대가 자주 인용하는 '나 어릴 땐'으로 시작하는 말은 박물관에 보내야 할 대표적인 대화법이다. 화자(話者)는 말하지만 청자(聽者)는 듣지 않는. 스피드가 경쟁력인 디지털시대에 무슨? 과거는 과거일 뿐인 것을.
역대 영화 흥행 15위에 진입한 영화 '써니'에 관객이 몰리는 건 각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칠공주의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시켜 대리 만족을 경험하고, 나이든 세대는 향수를 느껴서다.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이 스토리가 되어 날아다니고, 아빠가 용돈을 주자 표정 없이 '사랑해'라고 말하는 신세대 감정이 녹아 있는 탓이다. 코미디는 있지만 갈등이 없는 스토리 또한 스피드시대에 꼭 맞다.
지난 7월 말에 포항국제불빛축제를 다녀왔다. 원래 목표지는 속초였는데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는 급한 성격 탓에 포항으로 차를 돌린 결과였다. 메인 행사시간은 오후 9시인데 행사장인 포항 북부해수욕장 부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입구에서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민 행렬을 만났다. 먹을 걸 양손에 들고 메인 무대를 향하는 사람들, 포기하고 인도에 돗자리를 까는 사람들.
축제의 시원(始源)은 불빛과 함께하는 것이지만 요즈음 축제는 아이디어의 빈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포항국제불빛축제는 달라보였다. 바다에서 솟구친 불꽃은 밤하늘과 인간의 함성을 만나 스토리 있는 판타지를 보여주었다. 아우라도 진화했다.
우선 관변 단체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지 않았다. 포항시약사회는 무료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고, 포항해양경찰서 두호출장소는 숙녀용화장실로 개방됐다. 동원되지 않은 시민들은 각자의 욕구대로 불빛을 즐기고 있었다.
내 가족도 그랬다. 보충수업에 지친 아들은 미래의 에너지를 받았다 했다. 아내는 '저 별은 나의 별'이라는 노랫말을 떠올리며 별꽃을 한없이 땄다 했다. 나는 3등 완행열차를 타고 온 동해에서 고래 사냥에 성공한 기분이었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이 도시에 본격적인 붐업이 일어나야 하는 시기다. 정치인이 도와주겠다고 한 약속도, 단체 관람권을 판매하는 것도, 다른 도시의 협조를 받는 일도 필요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대회가 축제가 되려면 축제 공식에 따라야 한다. 축제는 시민이 주인공이다. 시민은 오라고 해서 가는 것도, 가지 말라고 해서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글을 열심히 문자판에 두드리고 있는 내게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너나 잘하세요."
부모 세대가 자주 인용하는 '나 어릴 땐'으로 시작하는 말은 박물관에 보내야 할 대표적인 대화법이다. 화자(話者)는 말하지만 청자(聽者)는 듣지 않는. 스피드가 경쟁력인 디지털시대에 무슨? 과거는 과거일 뿐인 것을.
역대 영화 흥행 15위에 진입한 영화 '써니'에 관객이 몰리는 건 각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칠공주의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시켜 대리 만족을 경험하고, 나이든 세대는 향수를 느껴서다.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이 스토리가 되어 날아다니고, 아빠가 용돈을 주자 표정 없이 '사랑해'라고 말하는 신세대 감정이 녹아 있는 탓이다. 코미디는 있지만 갈등이 없는 스토리 또한 스피드시대에 꼭 맞다.
지난 7월 말에 포항국제불빛축제를 다녀왔다. 원래 목표지는 속초였는데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는 급한 성격 탓에 포항으로 차를 돌린 결과였다. 메인 행사시간은 오후 9시인데 행사장인 포항 북부해수욕장 부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입구에서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민 행렬을 만났다. 먹을 걸 양손에 들고 메인 무대를 향하는 사람들, 포기하고 인도에 돗자리를 까는 사람들.
축제의 시원(始源)은 불빛과 함께하는 것이지만 요즈음 축제는 아이디어의 빈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포항국제불빛축제는 달라보였다. 바다에서 솟구친 불꽃은 밤하늘과 인간의 함성을 만나 스토리 있는 판타지를 보여주었다. 아우라도 진화했다.
우선 관변 단체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지 않았다. 포항시약사회는 무료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고, 포항해양경찰서 두호출장소는 숙녀용화장실로 개방됐다. 동원되지 않은 시민들은 각자의 욕구대로 불빛을 즐기고 있었다.
내 가족도 그랬다. 보충수업에 지친 아들은 미래의 에너지를 받았다 했다. 아내는 '저 별은 나의 별'이라는 노랫말을 떠올리며 별꽃을 한없이 땄다 했다. 나는 3등 완행열차를 타고 온 동해에서 고래 사냥에 성공한 기분이었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이 도시에 본격적인 붐업이 일어나야 하는 시기다. 정치인이 도와주겠다고 한 약속도, 단체 관람권을 판매하는 것도, 다른 도시의 협조를 받는 일도 필요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대회가 축제가 되려면 축제 공식에 따라야 한다. 축제는 시민이 주인공이다. 시민은 오라고 해서 가는 것도, 가지 말라고 해서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글을 열심히 문자판에 두드리고 있는 내게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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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가산책.hwp (17.5K) 38회 다운로드 | DATE : 2011-08-16 10: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