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1. 7. 18 문화산책 고스톱과 서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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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은 한편에서는 몸을 숨기고, 다른 한편에서는 숨은 사람을 찾아내는 우리의 전통놀이다. 술래가 눈을 감고 열을 세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되 진짜로 숨어서는 놀이가 안 된다. 때가 되면 술래에게 잡혀주어야 한다.
반면에 일본에서 전래된 고스톱은 승자에겐 다시 한 번 영광을, 패자에겐 같은 크기의 패배감을 안기는 놀이다. 피를 못 가진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피바가지까지 씌워 두 배 이상 고통을 주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놀이였다가 중독으로 이어지고 금전적 손해뿐만 아니라 정신적 황폐함까지 경험하게 된다.
요즈음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의 대세는 고스톱 같은 서바이벌이다. '월화수목오오오'라 부를 만큼 오디션을 통한 서바이벌이 황금시간대를 독점하고 있다. KBS의 '도전자'(취업) '톱밴드'(밴드) '불후의 명곡2'(아이돌 경연), MBC의 '나는 가수다''댄싱 위드 더 스타'(스포츠댄스 경연), SBS의 '기적의 오디션'(연기)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피겨스케이팅) 등.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살아남은 승자는 억대의 상금에 더하여 취업을 보장받기도 한다. 영국의 철학자 T.홉스가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을 표현한 정치용어인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을 끝없이 부추기는 방송현실이다.
인간(人間)은 하나가 하나에 의지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1등도 중요하고 승리도 좋지만 술래를 배려해 머리카락을 보여야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극히 짧은 경연시간을 통해 심사하고 대중 참여라는 방식을 덧붙인 후, 탈락자의 눈물을 클로즈업 하는 건 다양함이 생명인 대중문화시대에 취할 자세가 아니다.
경상도사람은 태산준령(泰山峻嶺)이라 하여 큰 산과 험한 고개처럼 선이 굵고 우직하다고 평해진다. 일을 함에 있어서건,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건, 뜸을 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태생적으로 어눌하고 표현이 매끄럽지 못하여 비논리적으로 비춰지는 점이 분명 있다. 하여 순간승부에는 미리부터 망설여지는 소심함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난다. 게다가 경상도 사투리는 방송언어로는 치명적이라 할 만하다.
참고로 한류열풍은 댄스가수가 주도하고 있다. 천박한 B급 문화자본의 파생물이라던 댄스음악이 한류의 주인공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탈락하지 않은 가수도 가치가 있겠지만 댄스가수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오늘 우리가 사는 대중문화시대 최고의 적이 바로 획일화가 아니던가.
한상덕(대경대학교 연예매니지먼트공연이벤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