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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문화가산책] 서태지와 신비주의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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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2000년 12월에 대중가수의 공연허가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대구시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엄청 곤욕을 치렀다. 당시 대구시는 서태지의 대구공연을 불허했었다.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와 함께 기획사의 대관료 지급능력을 믿지 못한 대구시가 지역방송사의 협찬을 요구했지만 기획사가 순순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서태지 팬클럽이 뿔났다. 수천건의 항의글로 대구시 전산망이 일시적으로 폐쇄됐고 대구시장에게 E-메일 수천통이 배달됐다. 그런 사이버시위가 효력을 발휘한걸까. 대구시는 황급히 항복하고 거꾸로 기획사에 공연장 사용을 부탁해야 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의 문화 권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때엔 신비주의를 연예마케팅전략으로 삼는 스타가 많았다. 배우 전지현은 인터뷰는 물론이고 예능프로는 절대사절이다. 본래의 나보다는 이지적이고 깊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가수 나훈아는 호텔디너쇼에 출연할 때 고객용 엘리베이터 대신에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가수 서태지는 자신의 기획사에 출근할 때조차 개인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다.

오늘날 신비주의는 먹혀드는 연예마케팅이 아니다. 이미 낡은 전략으로 간주된다. 매체 수가 워낙 많고 소통의 도구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은 범접하기 어려운 스타보다는 일상에서 친근한 스타를 원하고 있다. 자신과 끊임없이 소통하기를 바라는 거다. 아니라면 대중은 스타를 망각하고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아이돌이든 오래된 스타든 예능프로에 목을 매는 건 이 때문이다. 체험프로에 출연하고 CF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서태지와 이지아와 관련된 신비주의는 연예마케팅의 전략일 뿐이다. 두 사람이 십여년 이상 대중을 기만했다고 분노할 일이 아니다. 무얼 속았다고 하는 건지. 두 사람은 사생활을 노출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가수 서태지가 문화대통령으로까지 불리게 된 건 신비주의라는 고전적 스타마케팅이 주효했다. 배우 이지아가 단박에 스타가 된 것도 같은 방법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명감독 김종학 PD가 일본의 모처에서 스카우트를 했건 말건, 배우 배용준과의 스캔들이 결정적이었건 말건, 이제 와서 대중이 뭐라고 말할 성질은 아닌 듯하다. 가뜩이나 넘치는 정보로 지식창고가 비좁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흘러간 신비주의에 끝없이 집착할 이유가 있겠는가.



한상덕(대경대 연극영화방송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