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30일 조선일보 문화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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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을 이용한 수수께끼부터 풀면서 시작하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까닭은? 정답은 인간이 악해서가 아니라 웃기를 꺼려하는 본성 탓이란다. 물론 우스갯소리겠지만 일리가 있어 보인다. 보통 사람이라면 사촌이 조금만 아파도 눈물이 날 테니까.
드라마든 영화든 비극보다는 코미디를 만들기가 훨씬 복잡하고 계산적이다. 비극은 단순하여 반전이나 비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주인공과 그를 사랑하는 주인공만으로도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다. 같은 소재를 여러 차례 반복해도 무리가 없고 시공을 초월하여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코미디는 정반대다. 공간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1회적이다. 연령이나 성별과 함께 무대수단에 따라 웃음의 강도가 달라지는 게 코미디다.
경북 청도에 철가방 코미디 전용극장이 문을 열었다. 이름에서 밝히듯 중국집을 주요 아이템으로 삼은 극장이다. 외관은 중국집 철가방을 닮았고, 옆면에는 중국집 요리들이 흘러내리고 있다. 입장료는 1인분 자장면 값인 4500원이고 '개그도 자장면처럼 배달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베르그송은 웃음은 무감동이고 집단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억지가 개입되어선 안 되고 함께 보고, 서로 나누고, 반향을 통해야만 코미디가 성립된다고 설명했다. 베르그송의 풀이에 따른다면 청도극장은 코미디이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국집을 이리저리 대입한 건 홍보용으로는 기발한 아이디어겠으나 극장 디자인이나 프로그램 운영에까지 연결한 건 무지의 소치로 보인다. 새참을 먹듯 논두렁에서 배달 코미디를 즐기라는 건 코미디 장식이나 집단성을 가볍게 본 처사다. 4500원이라는 입장료도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40석 만석을 기록하는 대박이 난대도 10억원짜리 극장에서 올리는 최고수익이 18만원이라니. 아무리 코미디연수생을 출연시킨다지만 한심한 수익구조다. 무엇보다 청도군은 이런 엄청난 사업을 하면서도 연간 프로그램은 차치하고 유명 개그맨 한사람에게만 계속 매달리고 있다.
극장은 한두 해가 아니라 오랫동안 즐기고 싶은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게 우선목표다. 관광과 연계하려는 시도도, 농촌소득을 증대하는 일도, 20명 단체관람객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공연물을 제대로 즐길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극장은 기발함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관객의 욕구를 치밀하게 계산한 후에 경영해야 하는 시민공간이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
한상덕 대경대학교 교수
드라마든 영화든 비극보다는 코미디를 만들기가 훨씬 복잡하고 계산적이다. 비극은 단순하여 반전이나 비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주인공과 그를 사랑하는 주인공만으로도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다. 같은 소재를 여러 차례 반복해도 무리가 없고 시공을 초월하여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코미디는 정반대다. 공간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1회적이다. 연령이나 성별과 함께 무대수단에 따라 웃음의 강도가 달라지는 게 코미디다.
경북 청도에 철가방 코미디 전용극장이 문을 열었다. 이름에서 밝히듯 중국집을 주요 아이템으로 삼은 극장이다. 외관은 중국집 철가방을 닮았고, 옆면에는 중국집 요리들이 흘러내리고 있다. 입장료는 1인분 자장면 값인 4500원이고 '개그도 자장면처럼 배달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베르그송은 웃음은 무감동이고 집단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억지가 개입되어선 안 되고 함께 보고, 서로 나누고, 반향을 통해야만 코미디가 성립된다고 설명했다. 베르그송의 풀이에 따른다면 청도극장은 코미디이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국집을 이리저리 대입한 건 홍보용으로는 기발한 아이디어겠으나 극장 디자인이나 프로그램 운영에까지 연결한 건 무지의 소치로 보인다. 새참을 먹듯 논두렁에서 배달 코미디를 즐기라는 건 코미디 장식이나 집단성을 가볍게 본 처사다. 4500원이라는 입장료도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40석 만석을 기록하는 대박이 난대도 10억원짜리 극장에서 올리는 최고수익이 18만원이라니. 아무리 코미디연수생을 출연시킨다지만 한심한 수익구조다. 무엇보다 청도군은 이런 엄청난 사업을 하면서도 연간 프로그램은 차치하고 유명 개그맨 한사람에게만 계속 매달리고 있다.
극장은 한두 해가 아니라 오랫동안 즐기고 싶은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게 우선목표다. 관광과 연계하려는 시도도, 농촌소득을 증대하는 일도, 20명 단체관람객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공연물을 제대로 즐길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극장은 기발함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관객의 욕구를 치밀하게 계산한 후에 경영해야 하는 시민공간이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
한상덕 대경대학교 교수